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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용수 |
등록일시
: 2019-03-04 1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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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면서
최초의 자전거는 1790년 프랑스의 귀족 콩트 메데 드 시브락(Conte Mede de Sivrac)에 의해서 탄생했다. 이후 자전거는 1860년대 미쇼(Michaux)와 랄르망(Lallement)에 의해 앞바퀴에 페달이 달린 형태가 출시되면서 두 다리를 동력으로 승부를 가르는 레이싱도 가능해졌으며, 19세기 말 체인이 달린 형태가 개발되면서 전 인류가 향유하는 스포츠 문화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럼 한국에 자전거는 언제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도입되었을까 역사는 말하고 행한 것들의 기억이다. 한국(韓國)에서 자전거(自轉車)가 언제 처음으로 사용되었는지는 확실한 기록이 없어 알 수가 없다. 다만 20세기를 전·후한 개화시대일 것이라고 추측되어 서양의 선교사나 개화파 인사들이 처음 들여왔다고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자전거 도입의 역사는 1896년 서재필(徐載弼) 박사가 독립문 공사현장에 갈 때 처음으로 탔다는 설(設)도 있고, 같은 해 외무부 소속 간부인 고희성이 한양에서 자전거를 탄 것이 처음이라 하기도 한다. 그 후 1898년 윤치호(尹致昊) 선생이 하와이로부터 통타이어로 제작된 자전거를 도입해 왔다는 설(設)도 있으나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 일제강점기에 엄복동은 국내 각종자전거대회에서 일본선수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우승한 불세출의 스타였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 자전거史의 대명사이며, 한국 자전거 100년史에 있어 가장 빛나는 스타이다. 엄복동이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 모습은 당시 억눌려 있던 조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 사이클 경기(競技)는 오랜 역사와 전통(傳統)을 가진 스포츠로서 1869년 파리에서 프랑스와 루엔을 잇는 세계 최초의 도로 사이클 경기(競技)가 실시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 까지 세계 각국에서 널리 실시되고 있다. 사이클 경기는 올림픽의 정식 종목으로 1896년 아테네에서 개최된 제1회 근대 올림픽경기대회를 제외하고, 1990년 제2회 파리 올림픽 경기대회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기 있는 종목으로 계속 실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22년 5월 31일 전국자전거타기 대회가 개최되었고, 1939년 조선자전거경기연맹으로 발족(發足)하여 제1회 전조선자전거경기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으나, 1941년 일제가 국방 경기훈련을 위한 실용자전거경기, 중량운반 경기 등을 강요함에 따라 스포츠경기는 중지되었다. 해방 후 1945년 11월 조선자전차경기연맹이 창립 발기인 대회와 함께 대한체육회에 가맹하였으며, 1945년 서울운동장에서 개최된 전국체육대회 10개 종목 중 자전거(自轉車) 경기가 실시되었다. 한국이 사이클에 첫 선수단을 파견한 것은 처녀 출전이었던 1948 런던올림픽 때부터다. 하지만 역대 최고 성적은 2000 시드니올림픽 남자 40km 포인트레이스에서 조호성이 기록한 4위로 아직까지 노메달에 그치고 있다. 한국은 아시아권에서 정상급의 사이클 실력을 갖춘 국가로 손꼽힌다. 그러나 세계무대에서 아직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올림픽에서는 사이클에 대한 기대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이클은 그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운동부에 대한 이해부족, 선수 수급의 어려움과 작고 큰 대형 안전사고 등 이루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의 사건 등을 딛고 한국스포츠 발전에 기여했다. 이와 같은 발달 과정 은 헌신적인 지도자와 선수들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2019년 2월 海東 김용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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