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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용수 |
등록일시
: 2021-01-01 06: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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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辛丑年)을 열며
담론(談論)은 일반적으로 말로 하는 언어에서는 한 마디의 말보다 큰 일련의 말들을 가리키고, 글로 쓰는 언어에서는 한 문장보다 큰 일련의 문장들을 가리키는 언어학적 용어이다. 특정한 시점에서 인간의 언어행위를 규제하는 모든 관계를 포괄한다. 경자년(庚子年)에는 존경의 대상에 대해서도 공격적인 대응이 상식화되어 버려 우리의 살갑던 언어 정서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끼쳤다. 그런 막말에는 다른 사람들과의 일체감을 느끼는 결정적인 능력이 소멸되어 있다. 비웃고 조롱하고 경멸하고 쉽게 흥분하고 변덕 부리는 것이 일상화되어 버렸다. 이런 사회적 혼란과 변덕스러움은, 나아가 신중하고 질서 정연한 계획, 그리고 담대하고 확연했던 목표에서 우리를 이탈시켜 버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농업을 관장하는 기관인 농림축산식품부도 올 한 해를 최악의 해로 꼽을 정도로 24시간이 부족하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농식품부 내 방역국은 연일 강행군이며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코로나와 가축 질병을 동시에 제압해야 하는 과업으로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태다. 그러나 바람이 불면 오히려 누워있던 갈대가 일어나듯 우리에겐 역경 속에서 벌떡 일어날 수 있는 패기가 있다. 자상의 험악한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는 펄떡이는 삶의 기백이 우리에겐 있다. 여기저기에서 희한한 어법으로 사람들 속을 뒤집는다 할지라도 위안과 희망을 솎아 낼 수 있는 혜안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몰락의 냄새만 맡고 있기엔 우리는 너무나 담대했다. 우리들 피부에 달라붙은 수치와 분노와 불화를 말끔히 씻어 내고, 선하게 생긴 큰 눈에 무한한 편안함을 싣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너그러움과 지혜가 우리에겐 있다. 또다시 대지는 항상 활력으로 가득하고 생명의 힘이 넘쳐 난다. 심지어 무심하게 내버려둔 나무도 열매를 맺고 땅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뿌리조차 줄기차게 뻗어 대지를 뚫고 나온다. 이것이 살갗을 에는 한겨울에도 옷을 입지 않고 견디는 나무들의 생명력이다. 이 나무와 같은 질긴 생명력을 우리는 분명 가지고 있다.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자면, 불화와 분열의 징조를 숨기고 있어서 안 된다. 우리들 내부에 들어앉아 있는 증오심의 악령을 거침없이 내쫓고, 그 빈자리에 위안과 화합의 길벗을 불러 앉혀야 한다. 신축년(辛丑年) 2021년 4월 7일, 서울·부산 광역단체장을 비롯해서 15개 선거구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등 재보궐선거를 통해 민의를 대표할 적임자를 뽑는다. 만장일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인지라 차선책으로 다수결로 정해진다. 다수결이란 보다 많은 사람이 찬성하는쪽으로 전체의 의사를 결정하는 방법이다. 다수의 횡포를 통한 패권주의가 소수를 배제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대두된다. 따라서 소수의 주장과 의견이 존중되고 자유로이 표명될 수 있음이 전제요건이다. 또한 사람들의 관심과 전문성, 판단력이 떨어지거나, 홍보 및 참여가 부족하여 특정집단만의 다수결이 되어버리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장차 결정될 민심의 향배가 상생의 촉매로 작용할지, 아니면 다수의 횡포로 전락할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이미 가슴 속에는 장차 피워내야 할 꽃을 가득 품고 있을 터이니…. 15세기 선승 이큐(一休)의 선시를 옮겨본다. “벚나무 가지를 부러뜨려 봐도/그 속엔 벚꽃이 없네./그러나 보라, 봄이 되면/얼마나 많은 벚꽃이 피는가.” 김광석의 노래 ‘일어나’의 가사처럼 신축년(辛丑年)에는 바람이 불면 오히려 누워있던 갈대가 일어나듯 우리 모두 역경 속에서 벌떡 일어날 수 있는 패기를 보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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