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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육, 대안은 없는가(김용수 엮음)
작성자 : 김용수 등록일시 : 2018-05-11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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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의 위기? 아직 희망은 있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우리의 교육은 한마디로 암기위주의 주입식 교육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학력으로 능력을 평가되는 사회풍토에서 일류대학에 진학하는 길이 출세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산업사회로부터 첨단 테크놀로지사회로 가는 길목에 서있다. 도처에서 과도기를 고통스럽게 겪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중에도 단연 으뜸인 것은‘교실붕괴’라고 불리우는 망령이 우리 일선학교를 휩쓸고 있는 현상이다.
지금 우리 교육의 화두는 `행복'이다. 정부는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우리교육은 이미 2010년부터 `행복한 학교, 함께하는 우리교육, 모두를 위한 교육'이라는 슬로건을 세상에 내걸고 기운차게 달려왔다. 승자 독식과 학벌주의를 강화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패배의식만 안겨주는 교육을 과감히 버리고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교육을 꿈꾸고 실천해왔다. 우리가 옳았다. 이제 우리교육은 새 정부 교육정책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교육의 밑바탕에 깔린 철학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사랑과 나눔, 배려를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꼽을 수 있다. 그런 생각들이 모여 창의·공감교육을 지향, 학생들을 온전한 인격체로 대접하고 주체로 성장하도록 돕고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학교는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거기에 부모가 아이들을 믿고 맡기는 학교에 대한 꿈이 보태진다.
아이들의 배움은 즐거워야 하고, 즐거운 공부를 하면서 세상에 대한 이해를 깊고 넓게 다져나가야 한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잘 먹고, 몸과 마음이 함께 자랄 수 있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끝으로, 교육받을 권리를 복지로 받아들여야 한다. 무상급식을 하면 온 나라가 파탄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제 의무교육 안에서는 눈칫밥을 먹는 아이가 없다. 의무교육은 공교육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겨 배움이 더딘 학생도 포기하지 않는 책임교육, 다양한 잠재력을 키워내는 맞춤형 교육, 탐구·토론형 창의교육을 이루어야만 한다. 지나친 경쟁을 줄여 사교육비를 줄이고 진정한 배움의 즐거움을 돌려줘야 한다.
우리교육은 이처럼 너무도 당연한 생각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어쩌면 그동안 우리가 소홀히 했던 일들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우리 학교의 모습은 어땠나? 행복을 만들어가는 꿈꾸는 공간이 아니라 너는 죽고 나만 살겠다는 살벌한 경쟁의 공간이었다. 마치 입학시험을 목표로 한 학력 향상이 궁극의 목적인 것처럼 해왔다.
하지만 이는 교육의 목표를 지나치게 좁게 본 것이다. 좀더 큰 눈으로 보면 교육은 학생이 학습할 수 있는 모든 의미 있는 경험을 뜻한다. 그 경험에는 사랑과 나눔을 전제로 학생들이 마음껏 뛰놀고 잘 먹고 몸과 마음이 고루 성장하는 일 모두를 아우른다. 사실 이러한 교육은 공교육이 당연히 책임져야할 부분이지 않은가. 저마다 다른 꿈과 잠재력을 키우고, 탐구와 토론의 교육제도를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인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다시 학교가 희망을 만들어가야 한다. 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교사가 `교육의 본질'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이만큼 이 나라가 우뚝 서기까지는 누구도 무시못할 교육의 힘이 있었다. 매스컴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교육불가능 시대를 말한다. 교권은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고 학생들은 끊임없는 경쟁으로 내몰려 꿈을 잃어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공교육이 무너졌다고 하는 이 외침들은 역설적으로 여전히 공교육에 거는 기대와 희망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옛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교육이 한 나라의 근간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큰 그림을 그리자. 행복교육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아이들 탓만 말고 어른들이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그리고 함께 가자. 혼자일 때는 보잘것없지만 함께 할 때 더 큰 힘이 생긴다. 교사와 학생들은 똑같은 피해자이다. 사실은 한 목소리로 교육예산을 더욱 늘리고 교육환경을 개선하라고 외쳐야하는 교육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것이다. 모든 통제를 강압적이라고 몰아 부치며 교사들만 공격해서는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온갖 교육병리 현상이 교실을 휩쓸고 지나갈 때 민주적 질서마저도 붕괴된다는 생각을 해 볼 때이다. 그리고 곧 이들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성인이 될 것이다.
청소년들이 보다 공정한 룰 속에서 자기를 마음껏 표현하고 원하는 직업을 얻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여러분들끼리의’ 질서를 회복하고 공동체를 가꾸기 위한 열린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학교다. 학교를 희망의 마당으로 만드는 일은 아무리 서둘러도 늦는 법이다. 너무나 많은 난제들을 안고 출발한 정부에게 무리한 주문일지는 모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조그만 꿈과 희망이라도 만들어주기 위한 기존 교육체제의 과감한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길 바란다.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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