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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속의 담론(談論)을 찾아서
작성자 : 海東 김용수 등록일시 : 2018-09-2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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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면서


 오늘날‘스포츠란 우리에게 무엇인가?’사실 우리가 너무나 가까이 보면서 접하고 있는 스포츠에 대해 이 같은 물음을 던지는 것이 매우 새삼스럽다. 그러나 가만히 따지고 보면 우리가 매일 TV나 신문지상, 혹은 직접 관람하며 익숙하게 접하고 있는 스포츠에 대해 과연 보고 즐기는 것 외에 그다지 심도 있는 물음을 던져본 것 같지 않다. 아마도 스포츠에 대해 갖는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은 그저 보고 즐기는 여가활동의 일부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지난 2002년과 2006년 월드컵 때 길거리로 몰려나온 수백만의 시민들, 그리고 이 같은 호기를 놓치지 않고 끼어드는 자본의 손길, 매스컴의 상술 등 스포츠로서의 월드컵은 그저 현대사회에서 보고 즐길 수 있는 여가활동 정도로 한정시키기에는 너무나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올림픽을 비롯하여 연중 끊임없이 매스컴을 넘나드는 각종 대회의 소식과 스포츠 스타에 대한 뉴스들은 그저 일상적 사건들로만 바라보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의 삶과 밀착되어 있다. 물론 일상적인 것에 대해 불필요한 심각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라고 반문할 수 있으나, 우리는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그것에 얽매여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에 일상적으로 밀착되어 있는 스포츠가 우리의 삶을 자신에게 종속시키고 있는 기재일 수 있다.
미디어와 고도의 정보기술이 지배하는 현대사회는 권력독재에 항거하고 민주화를 열망하는 선구자들의 희생에 힘입어 객관적인 억압기재들이 거의 완전히 해체된 사회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객관적 억압기재들이 사라졌다한들 진정한 자유가 도래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우리가 자유로운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의 일상을 억압하고 있는 기재에 대해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일상을 돌아보기 어려운 것은 인간이 지극히 일상적인 것에 안주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과 밀착되어 있는 스포츠에 대한 사회학적 측면의 반성적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에 와 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던 스포츠에 대해 새로운 관점에서 재음미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60년대와 70년대를 살면서 TV에 비쳐진 스포츠에 대한 흥분과 열정의 반면에 80년대의 암울한 시기를 보내면서 군사 독재 정권의 대표적 우민화 정책의 수단이라는 스포츠에 대한 이미지가 교차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극복하고 체험을 통해서 스포츠를 일상의 생활처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아마도 80년대에 민주화 과정을 경험했거나 보아왔던 사람들의 경우에 스포츠에 대한 이미지가 필자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대의 삶에서 스포츠란, 현대인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캐시모어(Ellis Cashmore)의 ‘왜 스포츠는 우리를 매혹시키고 사로잡는가(Making sense of sports)’의 이론을 빌어 스포츠의 예측불가능성이 너무나 뻔한 현대 사회의 예측 가능한 삶에 청량제가 된 측면, 지나치게 예의바른 현대사회에 인간의 동물적 본성을 발산할 수 있는 장치로서의 측면, 너무 안전한 현대사회에 모험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 준다는 측면 등이 산재해 있다는 점이다.  
캐시모어(Eliss Cashmore)의 이론이 스포츠 수요자의 관점에서 설명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스포츠 공급자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우선 스포츠가 훌륭한 사회 통제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스포츠의 규율은 공정성과 공평성에 대한 신뢰성을 받아들이도록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포츠 규율은 과학적 원리와 상관없이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규율이 자의적인 것들이라 하더라도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려면 먼저 규칙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규율에 순종하는 태도는 스포츠를 통해 형성되는 신체 속에 각인’된다. 흔히 특정 스포츠에 적합한 신체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 즉 ‘몸을 만든다’는 말은 특정 스포츠에 참여하기 위한 과정에서 근육의 통증이나 고된 고통의 과정들에 순응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 스포츠의 표준화와 관련되는데 마치 신입 사원의 용모 기준에 맞춰갈 수밖에 없는 입사 지망생의 경우처럼 현대인들은 개인의 특질을 무시한 채 스포츠의 일반화된 표준화에 의해 규정된 신체의 규율에 복종하는 존재로 탈바꿈한다는 것이다. 또한 스포츠는 참여자들에게 즐거움을 부여해줌으로써 ‘사회 비판의 칼날을 무디게 하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즉 매일 쏟아지는 스포츠 소식이나 활동의 즐거움에 빠져‘일희일비(一喜一悲)하다보면 정작 중요한 사회 문제에 관심을 제대로 쏟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스포츠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상업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즉 오늘날 스포츠는 거대한 산업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인이 열광적으로 스포츠를 즐기게 된 데에는 더 많은 스포츠를 끊임없이 제공해줌으로써 그들의 소비를 부치긴 산업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이 같은 스포츠 공급의 확대는 결국 스포츠 활동의 기회를 증가시켰고, 이에 따라 높아진 수요의 결과로 인한 전문 스포츠 선수들의 몸값이 치솟아 사회적 유명 인사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는 결국 스포츠를 통한 사회 이동의 기회라는 인식을 가져와 특히 하층 계급에게 효과적 사회 이동의 길로 인식되게 된다. 이렇듯 스포츠 공급자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스포츠는 인기를 구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포츠는 일종의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인간 사회의 다양한 영역들과 복합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다. 즉 스포츠는 인류가 발생하고 진화하는 과정 속에서 시대별로 다양한 관점을 반영하면서 발전하였다. 또한 대중매체의 발달은 대중문화 발전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으며 그 중 스포츠는 최근에 가장 주목받는 대중문화 요소 중의 하나가 되었다. 스포츠문화는 사회제도 내에서 대중문화의 특성을 강하게 나타내면서 다양한 형태로 현대사회 속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대중매체의 발달과 더불어 스포츠 문화는 대중문화로 더욱 발전을 거듭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지나친 스포츠 상업화는 승리 지상주의를 발생시켜 도박이나 불법 내기, 승부 조작 등의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켜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을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스포츠 상업화의 폐해를 줄이고 건강한 스포츠 산업을 육성하려는 노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의 스포츠에 의한 세련된 사회 통제 수단으로서의 측면을 헉슬리(ALDOUS HUXLEY)가 그의 소설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서 묘사한 “쾌락에 의한 지배”사회에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한 미래 과학 문명의 세계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는 의미와 비유하게 된다.


2018년 7월
海東 김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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